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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팔란티어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소프트웨어의 가격은 ‘좌석 수’가 아니라 ‘성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의 실적은 AI가 여전히 클라우드 매출 성장을 견인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AI가 클라우드를 넘어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가치와 가격 결정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쏠리고 있다. 그 중심에 팔란티어가 있다. 팔란티어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판매를 넘어 고객사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그 위에 맞춤형 애플리케이션과 AI 에이전트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해왔다. 특히 사용량 기반, 성과 기반 가격 모델은 AI 시대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과금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AI가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질서를 다시 쓰고 있다.
과거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주로 사용자 수, 즉 시트 단위로 매출을 만들었다. 직원 한 명이 서비스를 사용하면 한 명분의 라이선스를 과금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업무를 대신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이 모델은 흔들리고 있다. 사람이 몇 명 쓰는지가 아니라, AI가 얼마나 많은 작업을 수행하고 실제로 어떤 성과를 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팔란티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팔란티어는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하고 통합하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최근 팔란티어의 주가는 세일즈포스, 서비스나우, SAP, 허브스팟 등 다른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압박을 받았다. 오픈AI와 앤트로픽 같은 기업들이 내놓는 새로운 AI 도구가 기존 소프트웨어 수요를 낮출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팔란티어 주가는 올해 약 20% 하락한 반면, 나스닥 종합지수는 8% 상승했다.
하지만 팔란티어는 다른 소프트웨어 기업들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 팔란티어는 오래전부터 기업 내부에 흩어진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하고, 그 위에서 고객 맞춤형 애플리케이션과 AI 에이전트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해왔다. 이는 세일즈포스나 서비스나우 같은 기업들이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영역이다. 즉 팔란티어는 AI가 소프트웨어를 위협하기 전부터, AI를 작동시키기 위한 기반 소프트웨어를 팔아온 셈이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팔란티어의 미국 상업 부문 성장이다. 팔란티어는 흔히 미국 정부와의 계약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최근 성장의 핵심은 미국 민간 기업 고객이다. 가장 최근 분기에서 미국 상업 부문 매출은 약 140% 증가해 5억700만 달러를 기록했고, 미국 정부 부문 매출은 66% 증가해 5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팔란티어는 미국 상업 부문 매출이 115% 증가해 31억4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매출 성장 때문만이 아니다. 이는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실제로 필요로 하는지 보여준다. 많은 기업은 이미 다양한 SaaS와 내부 시스템에 데이터를 쌓아두고 있다. 문제는 그 데이터가 부서별, 시스템별로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AI를 붙이려 해도 데이터가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실제 업무 자동화나 의사결정 지원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팔란티어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강점을 가진다. 데이터를 통합하고, 업무 맥락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고객 현장에 맞춘 AI 활용 구조를 설계한다.
가격 모델에서도 팔란티어는 AI 시대의 변화를 먼저 보여주고 있다. 최근 세일즈포스, 허브스팟, 어도비 등은 AI 사용량이나 AI가 특정 작업을 완료했는지에 따라 과금하는 모델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AI 기능 사용이 늘어날수록 소프트웨어 기업의 운영 비용도 증가하고, 동시에 기존의 시트 기반 구독 성장이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사용량 기반 또는 성과 기반 과금으로 이동하고 있다.
팔란티어는 이미 일부 고객에게 소프트웨어 도입 후 특정 성과가 발생했을 때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의 가격 모델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팔란티어 소프트웨어 설치 후 고객사의 이익률이 일정 수준 개선되면 사전에 정한 비용을 받거나, 산업 고객의 데이터를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설비 운영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시작했을 때 비용을 청구하는 식이다. 이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사용했으니 돈을 내라”가 아니라, “비즈니스 성과가 발생했으니 그 성과에 대해 지불하라”는 구조에 가깝다.
이 변화는 기업용 AI 시장 전체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AI 도입의 본질은 도구 구매가 아니라 운영 방식의 전환이다. 기업이 AI를 구매했다고 해서 곧바로 생산성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 정리,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 내부 시스템 연동, 현업 사용자의 활용 방식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팔란티어가 제공하는 전진 배치 엔지니어, 즉 고객 현장에 깊이 들어가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고 활용을 돕는 인력 모델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픈AI, 앤트로픽, 세일즈포스 등이 유사한 방식의 고객 지원 모델을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성과 기반 가격 모델은 매출 예측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고객사의 성과가 언제, 얼마나 발생할지에 따라 수익 인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맞춤형 구축과 현장 지원 중심 모델은 확장성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팔란티어가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면서도 수익성을 지킬 수 있을지는 앞으로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그럼에도 팔란티어 사례는 AI 시대의 기업용 소프트웨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앞으로 기업은 단순한 SaaS 도입보다, 내부 데이터를 연결하고 실제 업무 성과를 만드는 AI 운영체계를 더 중요하게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로그인한 사용자 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의사결정을 개선하고, 얼마나 많은 업무를 자동화하며, 얼마나 명확한 비즈니스 성과를 만들었는지로 평가될 것이다.
결국 AI 시대의 가격 결정력은 기능 목록에서 나오지 않는다.
고객사의 데이터를 이해하고, 업무 맥락에 들어가고, 성과로 증명하는 기업이 가격을 정할 힘을 갖게 된다. 팔란티어가 지금 시장의 의심 속에서도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